생필품 안전성 불신 ‘케미포비아’ 어떻게 극복할까?

생필품 안전성 불신 ‘케미포비아’ 어떻게 극복할까?

전문가·정부·시민사회 연결하는 언론 역할 중요
사회적 불안 해소하는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체계 필요

기사승인 2021-12-28 13:42:28
과학기자협회 제공

‘케모포비아’의 확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케모포비아는 화학물질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과 거부감이 사회 전반에 확산하는 현상이다. 생필품이나 먹거리에 포함된 각종 화학물질이 인체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과학적·객관적 근거 없이 증폭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국민건강 보호와 환경·생활용품 안전성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의학계와 과학계 전문가들은 “객관적·과학적 정보를 쉽게 설명하는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 중요 요소“라고 입을 모았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8년 광우병 소고기 논란부터 가습기살균제 참사, 라돈 침대 사건, 살충제 계란 파동을 거치면서 생활용품 속 화학물질에 대한 대중적 불신이 굳어졌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 이후로는 과학·의학적 정보가 담긴 언론 보도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하락한 실정이다. 

최근 국민 10명 중 7명은 생활용품이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와 한국과학기자협회는 국내 성인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생활용품 안전성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67%는 생활용품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응답자의 76%는 화학물질을 합성해 만든 제품이 위험할 수 있다고 답했다. 화학성분이 든 생활용품은 제대로 사용하면 이로운 점이 많다는 데 동의한 응답자는 40%에 그쳤다.

제조·판매회사에 대한 불신(62%)이 불안감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신뢰할 만한 기관의 부재(57%)와 언론 보도 및 언론의 불안감 조성(57%) 역시 적지 않은 응답자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주요 선진국 정부 및 관련 기관(52%)을 신뢰한다는 응답자가 우리나라 정부 및 관련 기관(39%)을 신뢰하는 응답자보다 많았다.

이에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과학기자협회는 환경·생활용품 안전성 보도준칙(가칭)을 제정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 중이다. 조동찬 과학기자협회 부회장은 “코로나19 관련 보도를 보면, 확진자가 급증했다는 기사의 제목에는 ‘무더기’ 확진, 몇천명 ‘경신’ 등 자극적인 어휘가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며 “충분한 사전교육을 받지 않은 기자들이 무분별하게 취재 및 보도를 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무열 동국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알지 못하는 상태로부터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한다”며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화학물질 안전성 이슈와 관련해 언론이 특별취재팀을 구성하고, 전문가들과 긴밀히 소통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방안에 적극 찬성한다”고 말했다. 정책과 관련해서는 “모니터링만 반복하지 말고, 정확한 비용·효용성을 따져 실효적인 정책을 도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국민건강 보호와 환경·생활용품 안전성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가계 전문가들이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   사진=한성주 기자

제품 소비자와 정보 수용자로서 국민의 눈높이를 파악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유명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국민들이 이해에 기반한 합리적 판단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복잡하고 어려운 정책이나 가이드라인은 화학물질에 대한 일반 소비자들의 두려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소비자들의 자기 효능감을 제고할 수 있는, 사실 중심의 명료한 정보전달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상시 예방적 정보전달, 위기상황에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보전달 방법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지현 C&I소비자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생활용품 안전성과 관련해 정부 기관보다 소비자 및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가 더 높은 경향이 있다”며 “이는 정부가 숨기려고 하는 정보를 소비자와 시민단체들이 폭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민단체 역시 완벽히 객관적인 정보만 생산하는 주체는 아니며, 자극적이고 과장된 주장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단순한 팩트뿐 아니라, 전문가의 설명과 해석을 함께 전달하는 심층 보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형수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위원회 환경분과위원장은 “전문가와 정책 결정자는 직접 소통을 하지만, 국민들은 언론을 매개로 간접적인 소통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전문가들은 문제상황이 발생하면 현재까지 밝혀진 근거를 제시하고, 과학적 불확실성이 있음을 알리면서 위험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해야 한다”며 “언론은 전문성이 검증된 전문가들로부터 충분히 의견을 듣고 객관적인 정보를 담아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계와 정부는 물론, 산업계와 시민사회도 언론을 매개로 원활히 소통·협업할 수 있다는 청사진도 제시됐다. 

조석희 주한유럽상공회의소 화학위원장은 “환경 및 생활용품 안전성 분야에 논란이 발생하면 전문가들의 분석과 정부의 대책이 중점적인 정보로 다뤄진다”며 “산업계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 역시 이와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산업계에는 위해성 평가에 기반한 양질의 정보가 축적되어 있는데, 충분히 검토되지 않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이동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화학물질과 화학제품의 사용이 불가피한 현대사회에서는 유해성 저감이나 대체물질 개발 등을 통해 리스크를 저감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결국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한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언론은 사건과 정보를 신속히 전달하는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창구”라면서도 “보도에 공식 용어를 사용하고, 개념을 정확히 구분해 설명하는 등 개선을 통해 신뢰도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박봉균 환경부 화학물질정책과장은 “그동안 정부가 리스크 관리에 집중했지만,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간과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화학물질 정보의 체계적인 관리자이자, 기업이 생산하는 화학제품의 안전성 검증자”라며 “환경부는 안전성 이슈, 정부 정책 및 제도 운영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기사화될 수 있도록 거버넌스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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